10월 10일부터 18일까지, 8박 9일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도 여행의 중심은 아이키카이 본부도장에서의 수련이었습니다. 본부 수련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선생님과 도우들을 만나고, 초대를 받아 다른 수련 현장에도 참가했습니다.
일본에 갈 때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한 가지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나는 왜 계속 일본에 가서 수련하는가.
한국에서 저는 도장을 운영하고 회원들을 지도하는 입장입니다. 단위가 있다 보니 누군가에게 기술을 설명하거나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제가 틀렸을 때 솔직하게 “그건 아니다”라고 말해 줄 사람은 줄어듭니다.
이번 일본 수련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배우는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키치조지의 겟소지에서 시작한 이번 수련
10월 11일에는 키치조지(吉祥寺)에 있는 겟소지(월창사, 月窓寺)를 찾았습니다.
무사시노시(武蔵野市) 아이키도연맹의 가을 연무회와 그에 앞선 수련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겟소지는 오래된 사찰이면서 아이키도 수련공간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이곳의 도장은 타다 히로시 선생이 지도해 온 곳입니다.
이번 참가 기회는 항상 신세를 지고 있는 선배인 고야나기 선생의 배려로 마련됐습니다.
평소 본부도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에서 여러 연령대의 수련자들이 함께 수련하고 연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번에 타다 선생께서 직접 수련을 지도하시지는 않았지만,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긴 하루였지만, 이번 출장의 시작으로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본부도장으로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본부도장에서 수련했습니다.
10월 12일은 일본의 공휴일인 ‘스포츠의 날’이었습니다. 이날 본부도장은 평소와 달리 도주가 지도하는 아침 수련 한 타임만 진행했고, 수련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스포츠의 날의 의미를 함께 되새기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날은 야마시마 선생과 한 시간 동안 짝을 지어 수련했습니다.
다음 날인 13일에도 다시 도주 수업에 참가했습니다.
그날 시호나게를 하던 중 도주께서 제 동작을 직접 보고 한 가지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상대를 팔로 끌어당기려 하지 말고, 타이사바키(몸 다루기, 体捌き)를 더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기본적인 이야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단위가 올라가고 익숙한 기술이 많아질수록 어느 순간부터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몸은 생각만큼 정직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작에서 다시 기본적인 지적을 듣는 것이야말로 제가 본부에 계속 가는 이유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큰선생께 직접 배운 세대와 만나다
이번 출장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본부에서 오랫동안 수련해 온 원로 수련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일이었습니다.
수련 후 야마시마 선생과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M 씨, W 씨, S 씨와 함께 앉게 되었습니다.
세 분 모두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의 생전 지도를 직접 경험한 세대입니다.
그중 W 씨는 올해 90세라고 했습니다.
커피를 마신 뒤 숙소 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W 씨가 갑자기 제게 손을 잡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길 위에서 한참 동안 몸을 직접 써가며 무언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언제 연결되고, 어느 거리에서 움직이며, 어떤 타이밍에 상대와 관계를 맺는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아흔 살의 W 씨는 계속 제 손을 잡고 직접 몸으로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기술 자체보다도 무언가를 전하려는 태도였습니다.
짧게 인사하고 헤어져도 될 상황이었지만, 헤어질 때에는 다음에 만날 때까지 더 좋아져 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 뒤 본부 수련에서는 S 씨와 짝이 됐습니다.
수련이 끝난 뒤 S 씨가 다음 날 수련 후에 시간을 조금 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정규수련이 끝난 뒤 둘이 남아 별도의 수련을 했습니다.
서로 번갈아가며 크게 던지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허리와 무릎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특별히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큰선생께 직접 배웠던 앞 세대의 수련자가 지금도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다음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전하려고 한다는 사실 자체가 제게는 매우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경험을 신비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랜 경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기술이 자동으로 옳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분들이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경험을 직접 받아보고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가”
이번 출장에서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한 또 한 사람은 쿠리바야시 선생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에 갈 때마다 가능하면 쿠리바야시 선생의 수업에 참가합니다.
선생의 수업에서 제가 특히 좋아하는 점은 단순히 동작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 카타를 이렇게 해야 하는가.
왜 이 위치에 서야 하는가.
왜 이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그 이유를 계속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번에도 수업을 하면서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기본을 여러 번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키도를 오래 하면 어려운 것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 복잡한 응용, 더 화려한 움직임에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국 돌아오는 곳은 기본입니다.
이번 출장에서는 그 사실을 여러 장소에서 반복해서 확인했습니다.
무사시노대학에서 다시 초보자의 수련으로
이번에는 오랫동안 초대를 받아왔던 키노시타 선생께서 지도하시는 무사시노대학 아이키도부에도 처음 방문했습니다.
키노시타 선생과는 약 20년 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동안 일정이 잘 맞지 않아 수련에 참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마침 이번에는 시간이 맞았습니다.
당일 수련에는 초보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키노시타 선생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부터 차근차근 지도했습니다.
저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좋았습니다.
초보자들에게 설명하는 수업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평소 무심코 지나가는 세부사항이 다시 보입니다.
발을 어느 위치에 두는가.
중심을 어디에 두는가.
상대를 어떻게 잡는가.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하나하나가 중요한 내용인데, 오래 수련한 사람은 그것을 어느 순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번 일본 수련에서 가장 많이 생각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기본이었습니다.
좋은 우케란 무엇인가
이번에는 야마시마 선생께 따끔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제가 오랫동안 해온 우케(받기, 受け)로서의 방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체격이 큰 편이고, 일본에 가면 “체격이 크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따로 하느냐”는 등의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런 체격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기술을 부드럽게 받아주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야마시마 선생도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 일본에서는 특히 상대가 기술을 연습할 때 움직임이 끊기지 않도록 협력하고, 가능한 한 좋은 우케가 되려고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다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대에게 잘 맞춰주는 것과, 실제로 충분히 성립하지 않은 기술까지 성립한 것처럼 받아주는 것은 다르다.
계속 자신보다 경험이나 수준이 낮은 상대의 기술까지 잘 받아주기만 하면, 상대는 자신의 기술이 충분히 통하고 있다고 느끼며 기분 좋게 수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서로에게 좋은 수련이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상대가 연습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충분히 성립하지 않은 것을 제가 과도하게 받아주어 기술이 된 것처럼 만들면, 그것은 상대에게도 정확한 피드백이 아닐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지적은 제가 제 자신의 수준을 지나치게 감추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마시마 선생은 제게 이미 그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과 판단이 있고, 저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을 텐데 왜 굳이 드러내기를 꺼리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때로는 상대에게 계속 맞춰주는 것보다 제 몸과 제 수준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늘 배우러 간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제 판단이나 수준을 필요 이상으로 뒤로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과 제 자신을 낮추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제가 평소에도 계속 생각하고 있던 숙제이기도 합니다.
좋은 우케란 무엇인가.
상대에게 협력하면서도 어디까지가 정직한 반응인지, 앞으로도 제 수련에서 오래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일본에 가는 이유
제가 일본에 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오래 알고 지낸 선배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제 제가 고단자이고 지도하는 사람인데, 그러면 과연 누가 제게 솔직하게 잘못을 말해 주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올 때에는 기술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귀국 후에도 비슷한 말을 다시 들었습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다른 환경에 자신을 놓아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자기 모습이 보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일본에 가는 이유는 유명한 사람을 많이 만나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잘못하고 있다면 잘못하고 있다고 말해 줄 사람이 있고,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본을 다시 물어보게 만들고,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몸을 써보게 하는 환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 가끔씩 제 몸을 던져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것
물론 수련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본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H 씨와는 NOBORI에서 긴 시간 식사를 하며 아이키도뿐 아니라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번에는 셋타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키노시타 선생에게서는 도장의 셔츠를 받았고, 본부에서 만난 여러 분에게도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제가 일본에 갈 때마다 작은 한국 과자나 기념품을 가져가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무언가의 가격을 맞추기 위한 답례라기보다,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라는 작은 인사에 가깝습니다.
아이키도를 오래 하다 보니 결국 남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관계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수련을 오래 하다 보니 좋은 사람들과 관계가 이어지는 것.
저는 그 순서가 더 좋습니다.
마지막은 다시 수련으로
이번 출장의 마지막에는 야마시마 선생과 치요다구 아이키카이의 합숙에도 참가했습니다.
본부에서 시작한 이번 수련을 다른 장소에서 다시 여러 사람과 땀 흘리며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18일 밤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번에 새롭게 얻은 어떤 특별한 기술 하나를 꼽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여러 가지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시호나게에서 타이사바키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기본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다시 물었고,
앞 세대 수련자들이 몸으로 전하려는 것을 경험했고,
좋은 우케와 자기표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결국 모두 같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수련하고 있는가.
다시 삼성당에서
한국에 돌아왔으니 다시 평소의 생활과 삼성당 수련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앞으로 아이키도를 하면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답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키도를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함께 수련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즐겁고, 진지하게 오래 수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 가운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함께 수련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좋은 수련환경을 찾는다면 제가 아는 좋은 사람과 좋은 장소를 연결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은 결국 제 자신의 수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본 수련에서 다시 확인한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다음에 일본에 갔을 때,
이번에 지적받았던 것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져 있고,
다시 만난 사람들이
“조금 좋아졌네.”
라고 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다시 수련하겠습니다.
이번 일본 체류 중 함께 수련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없는 동안 삼성당의 수련을 이어가 준 회원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다시 도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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